텀블러 바닥, 주방 가전의 패널, 야외 손잡이까지 스테인리스는 디자이너가 가장 자주 고르는 금속 가운데 하나다. 도면에는 보통 SUS304 아니면 SUS316 가운데 하나가 적힌다. 두 강종은 눈으로 구별하기 어렵고 가공도 비슷하지만, 놓이는 환경에 따라 몇 년 뒤의 겉모습이 크게 갈린다. 차이는 거의 하나, 316에만 들어 있는 약 2%의 몰리브덴이다.
SUS, STS, 304 — 같은 강종의 여러 이름
먼저 이름부터 정리하자. 핀란드 스테인리스 제조사 Outokumpu의 강종 대조표를 보면, 우리가 SUS304라고 부르는 강종은 유럽 규격으로 1.4301, 미국 ASTM으로 304, UNS 번호로 S30400이고, SUS 304는 일본 JIS 표기다. 한국 KS 표기는 STS 304다. 316도 같은 식으로 1.4401, ASTM 316, UNS S31600, JIS SUS 316, KS STS 316이다. 국내 현장에서 SUS라는 말이 굳어 있지만 KS 도면이나 성적서에는 STS로 적혀 있을 수 있으니, 같은 강종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두 강종은 모두 오스테나이트계에 속한다. 같은 대조표의 전형 성분을 보면 304는 탄소 0.04%, 크롬 18.1%, 니켈 8.1%이고, 316은 탄소 0.04%, 크롬 17.2%, 니켈 10.1%, 그리고 몰리브덴 2.1%다. 크롬은 오히려 304가 조금 많다. 니켈과 몰리브덴이 316 쪽의 차이다.

몰리브덴 2%가 막는 것은 ‘점 같은 녹’이다
스테인리스가 녹스는 방식 가운데 디자이너를 가장 곤란하게 하는 것은 표면 전체가 아니라 바늘 끝처럼 작은 점에서 시작하는 공식(孔蝕, 피팅)과, 틈새에서 시작하는 틈 부식이다. 국제몰리브덴협회(IMOA)는 몰리브덴이 이 두 가지 부식에 대한 저항을 높이고, 그래서 염분과 오염으로 생기는 얼룩을 막는 데 특히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숫자로도 차이가 보인다. Outokumpu는 염화나트륨 용액에서 일정 전위를 걸어 공식이 시작되는 온도, 즉 임계 공식 온도(CPT)를 전형값으로 공개한다. 304는 10°C 미만, 316은 20±2°C다. 같은 조건에서 316이 더 높은 온도까지 공식을 버틴다는 뜻이다. 다만 이 값은 특정 시험법(ASTM G150, 표면을 P320으로 연마)에서 나온 것이고, 회사도 다른 표면이나 다른 시험법은 다른 값을 낸다고 밝혀 둔다. 절대 기준이라기보다 두 강종의 서열을 보여 주는 숫자로 읽는 편이 맞다.
IMOA의 가로 난간 사례 글은 이 차이를 현장의 말로 옮긴다. 몰리브덴이 없는 304 난간은 공격적인 염화물이나 오염 환경에서 겉모습을 지키려면 정기 세척이나 코팅이 필요하고, 몰리브덴 2%가 든 316 난간은 그런 환경에서 가장 비용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적었다. 같은 글은 표면이 거칠게 마감됐거나 난간이 비를 맞지 않는 곳에 있을 때 부식이 특히 심하다고 지적한다.
무게, 강도, 가공성은 거의 같다
몰리브덴 말고는 두 강종이 얼마나 닮았는지도 알아 두면 결정이 쉬워진다. Outokumpu 표의 밀도는 304가 7.9, 316이 8.0kg/dm³로 거의 같아서, 강종을 바꿔도 제품 무게는 사실상 달라지지 않는다. 유럽 규격의 상온 최소 기계적 성질(판재 기준)도 0.2% 항복 강도가 304 210MPa, 316 220MPa이고 인장 강도는 둘 다 520MPa다. 같은 두께로 바꿔 써도 구조 계산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공 쪽도 비슷하다. 같은 자료의 절삭 가공 지수는 316L(1.4404)을 100으로 놓았을 때 304가 105, 316이 100이다. 304가 조금 더 깎기 쉽지만, 디자인 단계에서 형상을 바꿔야 할 만큼의 차이는 아니다. 결국 두 강종 사이의 선택은 무게나 강도보다 부품이 놓일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서 겉모습을 얼마나 오래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강종보다 먼저 정할 것: 환경과 마감
그래서 순서는 강종 이름이 아니라 부품이 놓일 환경에서 시작한다. IMOA 건축 안내는 해안의 염분이나 제설염, 산업 오염에 노출되는 곳이라면 잦은 세척을 감수할 수 없는 한 몰리브덴이 든 스테인리스를 매끄러운 표면 마감으로 써야 한다고 권한다. 강종과 마감이 한 묶음이라는 뜻이다. 앞의 난간 사례가 거친 마감을 부식이 심해지는 조건으로 꼽은 것도 같은 이야기다.

형태도 부식에 영향을 준다. 비가 닿지 않는 그늘진 면, 물이 고이는 오목한 곳, 부품끼리 맞닿은 좁은 틈은 염분이 씻겨 나가지 않는 자리다. 디자인 단계에서 이런 자리를 줄이고 물이 흘러내리는 경사를 주는 것만으로도 같은 강종의 수명이 달라진다. 금속 표면을 어떻게 연출하고 어떤 처리를 고를지는 메탈 질감 연출과 제품 표면 처리 종류에서 더 다뤘다.
용접이 들어가는 부품이라면 L 등급도 함께 본다. 304L과 316L은 탄소를 0.02% 수준으로 낮춘 강종이다. Outokumpu 표는 용접 열로 예민화된 상태에서 입계 부식 저항을 304와 316은 ‘아니오'(이중 인증 제품은 예외일 수 있음), 304L과 316L은 ‘예’로 표시한다.
자석이 붙으면 가짜일까
스테인리스 제품을 받으면 자석부터 대 보는 사람이 많다. Outokumpu 자료는 오스테나이트계가 풀림(어닐링) 상태에서 자성을 띠지 않는 유일한 강종 무리라고 설명하면서도, 성분이나 냉간 가공 때문에 페라이트나 마르텐사이트가 조금 생기면 자석에 끌리는 성질이 커진다고 덧붙인다. 굽히거나 눌러 성형한 304 부품의 모서리에 자석이 약하게 붙는 것만으로 강종을 판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강종은 자석이 아니라 밀시트(재료 성적서)로 확인하는 것이 확실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실내의 건조한 부품은 304부터 검토하고, 해안, 수영장 주변, 제설염이 닿는 야외 부품은 316과 매끄러운 마감을 한 묶음으로 정한다. 용접부가 있으면 L 등급을, 자석 대신 성적서를 본다. 이 기준을 사양서에 적어 두면 양산 이관 때 소재가 슬쩍 바뀌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관 단계에서 확인할 항목은 양산 이관 체크리스트에 모아 두었다.
출처
- Outokumpu, Steel Grades, Properties and Global Standards (PDF)
- IMOA, Stainless steel in Architecture, Building & Construction
- Catherine Houska (IMOA), Molybdenum Keeps Street Handrails Safe and Attra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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