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소재 이어폰이나 반투명 케이스가 다시 매대를 채우고 있다. 사실 새로운 트렌드는 아니다. 90년대 시스루 제품군의 재해석에 가깝다. 다른 점은 지금의 투명 소재가 단순히 속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 부품 배치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다룬다는 점이다.
1. 투명 소재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
불투명한 하우징 뒤에 무엇이 있는지 숨기던 시대와 달리, 요즘 소비자는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브랜드에 신뢰를 느낀다. 내부 회로와 배선을 정돈된 형태로 노출하는 것은 곧 제조 품질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투명 소재 제품이 늘어난 데는 이런 투명성에 대한 소비자 정서와 실제 소재의 투명함이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
이 흐름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투명 컬러 케이스로 개인용 컴퓨터를 다시 정의한 애플의 초기 아이맥이 자주 언급된다. 당시 베이지색 사각 박스 일색이던 데스크톱 시장에서, 속이 은은하게 비치는 케이스는 하드웨어를 감출 대상이 아니라 보여줄 대상으로 바꿔놓았다. 이후 여러 제조사가 투명 하우징의 게임 콘솔이나 휴대용 기기를 선보이며 한 시대의 유행을 만들었고, 지금의 투명 소재 부활은 그 문법을 다시 꺼내와 내부 레이아웃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층위를 더한 셈이다.
당시와 지금의 차이는 ‘왜 투명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있다. 과거의 시스루 디자인이 컬러 플라스틱을 통해 발랄한 인상을 주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의 투명 소재는 내부 구조 자체의 완성도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목적이 다르면 설계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2. PC와 PMMA, 어떤 소재를 쓸 것인가
투명 하우징에 흔히 쓰이는 소재는 폴리카보네이트(PC)와 아크릴(PMMA) 두 가지다. 사용 환경에 맞춰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PC (폴리카보네이트)
내충격성이 뛰어나 낙하 시 잘 깨지지 않지만 표면 스크래치에 약하다. 휴대용 전자제품처럼 낙하 위험이 큰 제품에 적합하다.
PMMA (아크릴)
광학적으로 더 맑고 스크래치에 강하지만 충격에 약해 깨지기 쉽다. 정적인 디스플레이 제품에 적합하다.
3. 내부를 보여줄 때 디자이너가 챙겨야 할 것
투명 소재를 쓰기로 했다면 내부 부품 배치도 디자인 대상이 된다. PCB 실크스크린 색상, 배선 정리, 나사 위치까지 모두 밖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투명 소재는 사출 성형 시 웰드라인이나 기포가 그대로 드러나므로 게이트 위치와 금형 설계를 더 정교하게 잡아야 한다. 마감 없이 소재 자체 광택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스크래치 방지를 위한 취급 공정도 별도로 필요하다.
💡 실무 포인트 — 투명 하우징을 쓰기로 결정한 순간, PCB 실크스크린 색상이나 나사 위치 같은 “안 보이던” 디테일이 전부 디자인 검토 대상이 된다는 점을 미리 팀에 공유해두면 뒤늦은 재작업을 줄일 수 있다.
실무 체크리스트
낙하·충격 위험도에 따라 PC와 PMMA 중 적합한 소재를 선택했는가
내부 부품(PCB, 배선, 나사)의 시각적 정돈까지 설계에 포함했는가
웰드라인과 기포가 노출되지 않도록 게이트 위치를 검토했는가
표면 스크래치 방지를 위한 포장·취급 공정을 마련했는가
투명 소재는 결국 숨길 것이 없다는 제조 자신감의 표현이다. 소재별 세부 물성은 폴리카보네이트 제조사 SABIC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CMF 전체 흐름 속에서 투명 소재가 갖는 위치는 2026년 산업 디자인 트렌드 글을, 사출 성형 시 발생하는 웰드라인 같은 이슈는 금형 설계와 종류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4. 최근 사례로 보는 투명 디자인의 진화
스마트폰 시장에서 뒷면을 투명하게 만들어 내부 부품 배치 자체를 시각적 언어로 삼은 최근 제품들은, 이 흐름이 단순한 복고 취향을 넘어 하나의 디자인 전략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카메라 모듈과 코일, 배선을 무작위로 숨기는 대신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조명 요소까지 더해, ‘내부’라는 원래 감춰야 할 영역을 오히려 제품의 얼굴로 삼은 것이다. 이런 접근은 투명 소재가 광학적 특성 이상의 의미, 즉 브랜드가 자사 엔지니어링에 얼마나 자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투명 소재를 쓰면 무조건 고급스러워 보일 것이라는 기대는 자주 하는 오해다. 내부가 정돈되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되면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역효과가 난다. 투명 소재를 채택한다는 것은 결국 내부 설계까지 외장 디자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다듬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숨기는 디자인
불투명 하우징 안에 부품을 배치 · 내부 정돈에 들이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여주는 디자인
내부 배치와 실크스크린까지 설계 대상 · 조립 공차와 부품 정렬에 훨씬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5. 마치며
투명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하우징뿐 아니라 내부 전체가 디자인 영역이 된다. 다음 프로젝트에서 투명 소재를 검토한다면 내부 부품 레이아웃부터 함께 스케치해보자.
Design Daily Life · 디자인의 일상을 기록합니다